일본군 헌병, 만주 헌병대와 몽골족, 전후의 대우 및 보복에 대해 아시는

일본군 헌병, 만주 헌병대와 몽골족, 전후의 대우 및 보복에 대해 아시는

알류트 0 214 04.29 16:57

 

안녕하세요.
예전에도 비슷한 글을 올렸는데, 저는 일본군 헌병에 대해 깊이 있는 고찰을 다루는 소설이나 만화를 구상 중입니다.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갈등하고 속죄하려는 자, 끝까지 합리화하는 자, 내부고발자를 비난하거나 침묵하는 자 등을 그리고 싶습니다.

헌병대나 특고경찰 관련해서는 일본 패망 직전 기밀 문서가 대부분 소각된 탓인지, 특히 만주국 관동군의 특무경찰이나 헌병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나 증언은 상당히 부족하더군요.

예를 들어 하얼빈 헌병대가 체포자들을 731부대에 넘겼다는 얘기나, 재판 없이 사살하거나 밀정으로 활용했다는 내용은 흩어진 증언 형태로만 확인됩니다.


1. 만주국 내 몽골족과 일본군 헌병의 관계

당시 만주국에는 일본인, 중국인,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 등 다섯 민족이 공존했는데, 그중 몽골족은 씨족 중심의 복수 문화가 강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챗GPT에 물어보니 일본군 내부에서도 이런 민족성을 연구했고,
몽골인은 겉으로는 순종적이지만, 가족에게 해를 끼치면 반드시 보복한다”는 식의 평가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또한, 헌병대 내 지침으로는 몽골 유력가나 족장 자제는 포섭이나 회유를 신중히 고려하고, 심문 시 씨족·가문 정보를 먼저 파악하라는 식의 내용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군 헌병의 특성상, 항일 인사가 헌병을 공격하면 그 가족이나 마을에 보복하거나, 도망간 게릴라의 가족에게 화풀이하는 경우도 많았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민족성과 헌병의 방식이 충돌한 사례가 있을까요?

혹시 일본이 분석한 몽골족에 대한 더 구체적인 자료나, 헌병과 몽골족 간의 마찰 사례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실까요?
(한국어보단 일본어 자료가 있을 듯합니다.)


2. 일본 패망 후 헌병·특무경찰의 운명과 보복

일본 패망 후 도주에 실패한 헌병이나 특무경찰들은 소련이나 중국의 포로수용소로 끌려갔을 텐데, 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중국의 경우, 난징대학살의 주범 같은 전범은 사형에 처했지만, 일반 포로는 오히려 재교육과 용서를 통한 교화가 있었고, 일본군에 가족을 잃은 중국인들이 일본 포로를 돌봐주는 사례도 있던 걸로 압니다.
(물론 일부 민간인 보복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소련은 혹독한 강제노동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다수 사망자가 나왔고, 특히 헌병이나 특무경찰 출신은 소련 심문관들 사이에서도 '전범'으로 간주돼 더 가혹하게 대우받았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자료가 희박해서 실제로 고문을 했는지, 아니면 모욕이나 폭력 정도였는지, 명확한 근거가 궁금합니다.

또한, 패망 직후 특무경찰이나 헌병이 민간인에게 즉결 처형당하거나 보복당한 사례도 챗GPT에선 많다고 하던데, 실제 사례나 참고 가능한 기록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혹시 위의 주제들에 대해 더 잘 아시거나, 참고 가능한 1차 자료, 논문, 증언, 일본어 문헌 등을 알고 계신 분 있으실까요?

 

고증과 서사 양쪽 다 신중히 접근하려고 하다 보니, 어느 한쪽으로 단순화된 자료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요.
도움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Comments

최근글


새댓글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